남해 델꼬펜션 주변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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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생태관

펜션에서 자동차로 30분거리

나비생태공원에 있는 나비생태관은 나비의 모양을 본 딴 거대한 조형물입니다. 이곳에는 제 1전시실, 2전시실, 나비온실, 체험학습장, 표본전시실 등이 있으며 실외에는 나비사육실과 식초식물 재배 하우스 등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아이템별로 나비와 공충을 보다 친숙하고 쉽게 접할 수 있어 방문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독일마을

펜션에서 자동차로 25분거리

독일마을은 산과 바다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동천리 문화예술촌 안에 있습니다. 독일로 파견되었던 교포들이 은퇴 후 우리나라에 귀국하여 정착하기 위해 직접 독일에서 건축부재를 수입하여 전통적인 독일 양식 주택을 건립한 곳입니다. 이 주택들은 독일교포들의 주거지 이외에 관광객을 위한 민박과 휴양지로도 사용되고있습니다.

미국마을

펜션에서 자동차로 10분거리

겨울에도 따뜻하고 전국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천혜의 관광자원과 청정해역으로 이름난 이동면 용소리 일원에 약 30억원을 투입하여 7,500평 규모로 미국식 주택 21동과 복지회관 및 체육시설들을 조성하였습니다. 특히 주택의 경우에는 모두 목재구조로 한국에서 보기 힘든 특색있는 주택을 건설하여 마치 미국의 작은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합니다. 각 주택시에는 민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문화 및 전통주택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보리암

펜션에서 자동차로 15분거리

원효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라 지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으로 변경했다고 합니다. 전국의 3대 기도처 중에 하나이며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군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힙니다.

상주해수욕장

펜션에서 자동차로 25분거리

마주 보이는 섬들이 파도를 막아주기 때문에 호수같이 잔잔한 상주해수욕장입니다. 주변에 오염원이 없어 물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하며 백년 이상 묵은 해송 숲이 긴 해안선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특색입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 앞으로 관광유람선이 운행되며 겨울철에는 운동선수들이 전지훈련장으로도 활용합니다.

몽돌해수욕장

펜션에서 자동차로 10분거리

몽돌해수욕장은 선유도 내에 위치하고있습니다. 파도와 바닷물에 풍화된 동그랗고 부드러운 모양의 자갈이 해수욕장 바닥에 깔려 있어 몽돌해수욕장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해변에는 파도가 칠 때 마다 몽돌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정면을 바라보게되면 방축도를 볼 수 있습니다. 선유도 해수욕장, 옥돌 해수욕장과 더불어 선유도 내에 있는 세개의 해수욕장 중 하나로 선유도 여행지로 꼽힙니다.

원예예술촌

펜션에서 자동차로 10분거리

원예예술촌은 원예 예술가를 중심으로 20명의 원예 인들이 집과 정원을 개인별 작품으로 조성하여 이룬 마을입니다. 스파 정원, 토피어리 정원, 조각 정원, 풍차 정원, 풀꽃 지붕, 채소 정원 등등 저마다 아름답고 개성적인 21개소의 주택과 개인정원을 나라별 이미지와 테마를 살려 조성하였으며 원예인들이 실제 살면서 가꾸고 있습니다.

용문사

펜션에서 자동차로 10분거리

원효가 세운 사찰인 보광사를 금산에서 이 곳으로 옮길 때 폐사 직전의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 보광사를 용연 위쪽에 터를 잡았다고 해서 용문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용문사에는 국가지정 보물인 괘불탱과 대웅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용문사 석불, 부도군을 비롯하여 문화재자료 천왕각, 명부전, 건양2년영산회산탱, 소장문헌, 삼장보살탱, 건양2년신중탱 등이 보존·관리 되고 있습니다.

다랭이마을

펜션에서 자동차로 10분거리

다랭이마을은 2001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환경부가 자연생태 전국 최우숨마을로 선정하였을 정도로 자연환경이 잘 보전되어 주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 곳입니다. 선조들이 농토를 한뼘이라도 더 넓히려고 산비탈을 깎아 곧추 석축을 쌓고 계단식 다랭이 논을 만든 까닭에 아직도 농사일에 소와 쟁기가 필수이며 마을인구의 90%이상이 조상대대로 살아오는 사람들로 네집 내집 없이 식사시간에 앉은 곳이바로 밥먹는 곳이 되는 아직도 인정이 살아있는 마을입니다.